
밴프 (Banff) 는 캘거리 (Calgary) 에서 서쪽으로 1시간 30분 거리의 캐나다 앨버타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다. 1880년대 말 캐나다 태평양 철도의 사장이 자신의 출생지인 스코틀랜드 밴프를 떠올리며 이 지역을 밴프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밴프를 중심으로 주변에 레이크 루이스 (Lake Louise), 에머럴드 호수 (Lake Emerald), 캔모어 (Canmore) 등의 관광지가 형성되어 있고, 교통과 숙박시설 및 상권이 몰려 있다.
5시간여 비행기를 타고 예상보다 일찍 캘거리에 도착했다. 입국 검사를 마치고 부랴부랴 Brewster Express 버스 탑승구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좀 더 일찍 떠나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 해서다. 다행히 버스 기사님이 기다려 주시겠다고 하여 티켓 시간을 변경할 수 있었다. 지금 떠나면 예정보다 2시간 이상을 버는 셈이라 밴프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이번 여행은 대중교통만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캘거리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여 밴프로 이동하지만, 밴프 내 여러 관광지로 이동할 때마다 주차 문제로 시간 낭비가 많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후 전체 일정을 자동차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계획했던 터였다.
Brewster Express 는 캘거리 공항-밴프로 이동하는 버스 업체 중 가장 크고 왕복편수가 많아 이용하게 되었다. 버스에 올라타니 2/3 정도의 좌석이 채워져 있었다. 보기에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안전한 여행이 될 거라는 추측이 들었다.

밴프로 이동하는 내내 창 밖의 풍경은 드넓은 들판과 로키 산맥의 날카로운 산들로 채워졌다. 로키산맥은 캐나다부터 미국의 뉴멕시코 지역까지 남북으로 약 4,500KM 에 걸쳐 있다. 때문에 90분간 이런 산들이 끊임없이 보인다는 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번 여행의 날씨는 초반에는 맑고 일정 후반에는 비가 예정되어 있어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시작했다. 오늘 같은 날씨로 마무리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았다.


이번 여행의 숙소로 선택한 곳은 Moose 호텔이다. 4성급 호텔인 이곳은 밴프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호텔 바로 앞에서 모든 지역으로 이동하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원목으로 지어진 내외관이 마치 별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특히 로비 한편에 마련된 벽난로에는 실제 장작을 태우고 있어 장작 타는 소리와 냄새에 은근히 힐링이 되었다.


호텔에는 파치니 (Pacini) 레스토랑이 붙어있었는데 생각보다 음식이 괜찮아 첫째 날 저녁과 나머지 일정의 조식은 모두 여기서 해결했다. 직접 짜낸 오렌지 주스와 웨이터분이 정성스레 만들어주는 카페라테 맛이 매우 괜찮았다.
무스 호텔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꼭대기 층에 마련된 야외 Hot Tub (온수 욕조) 였다. 일정 내내 아침저녁으로 사용한 곳이기에 내일을 시작하는 시점에 다시 소개하기로 한다.


저녁을 먹자마자 다운타운 거리로 향했다. Banff Ave 거리를 기준으로 북쪽은 Cascade 산이, 남쪽은 Sulphur 산이 버티고 있었다. 중심부는 차 없는 거리라 산책하면서 길 양쪽에 늘어서있는 음식점과 상점을 구경하기에 아주 좋았다.
걷다가 유명한 아이스크림 가게라기에 줄을 섰다. 저녁 때라 그런지 인기 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 맛은 이미 솔드 아웃이었다. 두세 가지를 골라 한입씩 맛본다음 커피맛과 초콜릿맛이 가미된 것을 골랐다. 줄이 길어도 기다린 만큼 아이스크림 맛은 좋았다. 다음날 또 먹을 만큼...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호텔 앞에서 1번 버스를 타고 Upper Hot Spring 으로 이동했다. 밴프의 유명한 야외 온천탕인데 개장일이 1886년일 정도로 오래된 곳이다.
온천탕은 수영장 형태로 되어있고 대부분 깊이는 허리 높이 정도라 어린아이들도 많이 보였다. 가족들이 방문하기에 아주 좋을 듯했다.
미네랄이 풍부한 온천물에 전신을 담그고 1시간 정도 있으니 나른해지며 휴식이 되었다. 마치 에어컨을 틀고 이불속에는 전기담요를 틀고 누운 것 마냥 차가운 공기가 오히려 뜨듯한 온천물을 더 극대화시켜주고 있었다.


어제의 온천탕이 너무 만족스러웠던 것인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호텔 꼭대기층에 있는 Hot Tub (온수욕조) 로 올라가 보았다. 실외에 온탕이 2개 위치해 있었고, 그 옆에는 사우나와 화롯가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터라 산과 구름과 나무들에 예쁜 색깔을 입혀주고 있었다. 온탕은 버블 장치도 되어있어 차가운 공기에 하얀 김을 불어넣어주었다. 어제의 온천탕 못지않은 만족감이 몰려왔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은 후 이번에는 6번 버스를 탔다. 영혼의 물이 흐른다는 미네완카 (Lake Minnewanka) 호수를 보기 위해서다. 밴프의 북동쪽에 위치한 미네완카 호수는 죽은 자들의 영혼이 만나는 곳이라는 뜻으로 그 길이만 20km 가 넘는 빙하호수이다.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호수에 영혼이 산다고 생각하여 존경하고 두려워했다고 한다. 20분 정도가 지나니 코발트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막상 비현실적인 호수 색깔을 보니 원주민들이 두려워하는 전설은 바로 잊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호수를 더 가까이 보고자 조그마한 보트 선착장으로 이동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이곳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하자 약간의 출렁임이 있었다. 그래도 선착장 끝까지 이동해서 사진 촬영하기 좋은 장소를 골랐다. 그냥 찍기만 해도 인생샷 하나는 건질 수 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어디에 홀린 듯이 호수를 바라보고 있으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시 숙소 쪽으로 이동했다. 오전에 흐렸던 날씨가 결국 비를 뿌리더니 다시 금방 개면서 무지개를 활짝 보여주었다. 길가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이며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최근 본 무지개 중에 가장 가까웠고 또 선명하였다. 구름이 움직이며 무지개는 다시 사라졌다.

점심을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식당 한끼에서 해결한 후 다시 1번 버스를 타고 곤돌라 탑승지역으로 이동했다. 2000미터 높이의 Sulphur 산 정상에 올라가는 밴프의 유일한 곤돌라인데, 50-60도 기울기로 단 8분 만에 도착할 정도로 운행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밴프 시내가 점점 멀어지며 산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 내리니 기온이 상당히 내려간 것이 느껴졌다. 정상 건물 안의 커피숍에서 따뜻한 카페라테로 몸일 잠시 녹였다. 산 꼭짓점까지 나 있는 산책로를 따라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과 산 사이의 골짜기에 위치한 밴프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건물들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호수와 산들이 많은 구름들도 덮여있는 모습이었다.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한 터라 좀 더 늦은 시기에 왔다면 더 아름다웠을 것 같다.


(다음 편에는 루이스 호수와 모레인 호수 방문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