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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 (New York Philharmonic) -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의 마지막 공연

by 블랙우루스 2023. 10. 9.

 


1842년에 설립된 뉴욕 필하모닉 (New York Philharmonic) 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유명한 관현악단이다. 필하모닉은 사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필로스 (Philos) 에서 유래된 Phil 과 조화로운 음악을 의미하는 하모니코스 (Harmonikos) 가 합쳐진 단어로 음악을 사랑하는 모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뉴욕의 링컨 센터 (Lincoln Center) 에 위치한 뉴욕 필하모닉은 맨해튼 65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선상에 있다. 아래에 보이는 분수대를 기준으로 정면에 보이는 것이 그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건물이고, 왼쪽 편에는 David Koch 극장이 그리고 오른쪽에는 필하모닉이 위치한 David Geffen Hall이 위치해 있다. 

 

링컨센터 분수대와 메트로 폴리탄 오페라 건물
David Geffen Hall 필하모닉 건물


필하모닉 건물 내부에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나이가 있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분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젊은 시절 감상했던 선율을 기억하고자 다시 필하모닉을 찾으신 게 아닐까 생각해 봤다.

공연장 로비 1층
공연장 로비 2층
공연장 2층 발코니에서 바라본 링컨센터 분수대와 David Koch 극장 건물

 
이번 필하모닉 공연은 16,934번째 무대이다. 2018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츠베덴 음악감독이 2023-24 시즌 후 사임한다고 밝힘에 따라 아마도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공연일 것 같다. 공교롭게도 츠베덴 감독이 서울시립교향악단 (Seoul Philharmonic Orchestra) 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선임되어 2024년부터 5년간 이끌 예정이라고 한다. 
 
196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얍 판 츠베덴은 5살 때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하여, 16세에 줄리아드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19세에 암스테르담 왕립콘서트 헤바우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콘서트마스터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36세에 교향악단 지휘자로 데뷔하게 된다. 츠베덴이 이끄는 뉴요 필하모닉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을 단기간에 끌어올려, 뛰어난 수준을 유지한 오케스트라로 찬사를 받아왔다. 
 
오늘 공연의 담당자와 순서는 아래와 같다. 


Jaap van Zweden, Conductor 음악감독
Leif Ove Andsnes, Piano 피아니스트
Synergy Vocals, Ensemble 앙상블
 
1. BEETHOVEN (1770-1827) : 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Op. 73, Emperor (1809)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E플랫 장조, 황제 (약 40분 연주)

2. Intermission 휴식시간 15분

3. Steve REICH (b. 1936) : Jacob's Ladder for vocal ensemble and chamber group - 스티브 라이히 "야곱의 사다리"  (약 20분 연주)

4. SCHUBERT (1797-1828) : Symphony in B minor, D.759, Unfinished (1822) - 슈베르트 교향곡 나단조, D.759 미완성 곡 (약 30분 연주)


공연장 내부 전경

본 무대에 입장하니 약 70여 명의 연주자들이 각자의 악기를 조율하고 음을 맞춰보고 있었다. 한 명 한 명 얼굴을 둘러보니 전체 연주자의 약 30% 정도는 동양계로 보였다. 공연에 가기 전 드레스 코드가 있을까 걱정했는데 편안한 복장의 관객들이 많아 안심이 되었다. 반대로 연주자들은 검은색 계열의 정장 옷차림이었다. 
 
바이올린 수석 연주자가 피아노로 음정을 맞추고 착석하자, 피아니스트와 지휘자가 입장했다. 관객석의 조명이 암전 되며, 연주석은 밝게 비치기 시작했다. 지휘자는 관중에게 간단한 목례 인사를 한 후 지휘단에 오르더니 베토벤의 "황제" 연주를 바로 시작하게 했다. 
 
베토벤이 이 곡을 작곡한 1809년에는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니는 어지러운 전쟁 시대였다. 게다가 베토벤 스스로가 난청 증세로 음악 작업을 하기 어려운 암울한 환경에서도 이토록 영감을 주는 피아노 협주곡 역작을 만들어냈다. 베토벤의 이 탁월한 피아노 협주곡이 나폴레옹 황제와 연관되는 "황제"라는 제목이 붙여진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마도 이 곡의 위풍당당한 분위기를 고려해 베토벤이 죽은 후에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의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Leif Ove Andsnes) 는 섬세하면서도 생동감 넘치게 피아노를 다뤘다. 때로는 얼굴살이 떨릴 정도로 격렬하게, 특정 음에서는 손동작이 커지는 등 음악에 완전히 몰입하여 지휘자보다도 눈길이 갈 정도로 곡의 연주를 이끌고 있었다.

곡은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관객들은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지는 않았고, 곡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지휘자와 피아니스트가 3번을 퇴장하고 입장하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피아니스트가 단독 앙코르 독주를 시작했다. 앙코르 공연이 끝나고서도 2번의 박수갈채가 더 이어졌다.

츠베덴 음악감독의 키가 생각보다 작아 피아노에 가려져 지휘하는 뒷모습조차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워 뉴욕 필하모닉 페이스북에서 당일 현장 사진을 몇 개 가져와 봤다. 
 

츠베덴 음악감독 (왼쪽) 과 피아니스트 안스네스 (오른쪽) [출처: New York Philharmonic Facebook]
피아니스트 안스네스의 연주 모습 [출처: New York Philharmonic Facebook]


15분간의 Intermission 이 끝나고 2번째 연주가 시작되었다. 스티브 라이히의 "야곱의 사다리" 라는 곡인데, 야곱의 사다리는 이스라엘의 족장 야곱이 여행하는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는 꿈을 묘사한 구절 (창세기 28:12) 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했다고 한다.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천국과 지상세계를 연결하는 사다리를 상상하게끔 하는 스토리로 구성했다고 보면 된다. 이 곡에는 4명의 보컬 앙상블이 참여하는데, 몽환적인 분위기를 목소리로 연출하여 곡의 신비로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야곱의 사다리 연주. 왼쪽의 보컬 4명이 특징 [출처: New York Philharmonic Facebook]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의 교향곡 "미완성" 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 한 불후의 명작인데, 제2악장까지만 완성되어 있어 곡 이름이 "미완성" 이다. 왜 미완성일까? 곡이 유실된 것일까 아니면 완성 자체를 못한 것일까? 이 곡이 미완성으로 끝난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슈베르트는 곡을 쓰다가도 구성상의 교착상태에 이르면 중단하는 미완성 작품이 꽤 많다는 점으로 미루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대로 남겨놨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곡은 총 30분 분량이며 2악장은 동요 "옹달샘"의 부분과 유사한 멜로디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슈베르트 미완성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는 모습

곡당 연주 시간이 길었음에도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에 눈과 귀를 맡기다 보니 90분 공연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내년부터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게 된다. 다시 한번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