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 몰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은 바로 미국 국회의사당이다. 1700년대 후반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수차례 증축과 재건축을 통해 현재의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우리가 보통 뉴스에서 접하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 장소가 바로 아래의 국회의사당 앞마당이다.
미국 의회는 특이하게 상원과 하원으로 분리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상원은 각 주당 2명씩 선출하여 총 10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원은 인구 비례로 의석 숫자가 결정되는데 10년마다 인구조사를 통해 그 기준을 삼는다.
하원의원이 선출되는 2년 임기에 맞춰 의회의 회기가 진행되며 전국의 상원과 하원의원이 국회의사당에 모여 입법 및 심의 활동을 하게 된다.

백악관 투어와는 다르게 국회의사당 투어는 웹사이트를 통해 쉽게 신청이 가능하다. 입장하려면 위에 보이는 의사당으로 가면 안 되고 그 반대편에 있는 Visitor Center 로 가야 한다. 방문센터는 지상 건물이 아니라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야 찾을 수 있는데, 추가 표지판이 보이지 않아 찾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방문센터 데스크에서 예약을 확인되면 Tour Pass 를 받을 수 있다. 이후 바로 옆의 입장줄에서 대기하면 예약시간대로 입장할 수 있다.

입장하게 되면 바로 Theater 로 이동해 국회의사당을 소개하는 15분짜리 영상을 시청한다. 영상의 주제는 라틴어 E Pluribus Unum (Out of Many, One) 인데 , "여럿이 모여 하나로" 라는 뜻으로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여사는 미국의 통합과 공존을 뜻하는 말이다. 미국의 국장 (Great Seal) 에도 해당 문구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미국의 표어와도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Theater 에서 나오면 그룹별로 다시 줄을 서게 되는데 이때 투어 가이드가 헤드폰을 나눠준다. 관광객이 많아 육성 전달이 어려운데 헤드폰을 쓰면 편하게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실제 회기가 진행되는 의사당까지 투어가 가능한 것은 아니고, 국회의 가장 중심부인 Rotunda 방과 미국의 모든 주를 대표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National Statuary Hall 등을 위주로 투어가 진행된다.

로툰다 (Rotunda) 원형홀은 아마도 국회의사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소일 것이다. 국회의사당 중간 부분에 아치형으로 높게 솟아있는 천장이 바로 이곳이다.
약 55미터 높이의 이 원형홀 천장에는 "워싱턴의 신격화 (The Apotheosis of Washington)" 벽화가 그려져 있다. 워싱턴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옆에는 독립 당시의 13개 주를 의미하는 13명의 여인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도 E Pluribus Unum 문구가 등장한다.
가이드 말로는 워싱턴 대통령을 대놓고 신격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었으나 정작 워싱턴은 이 부분을 싫어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벽면에는 역사적인 순간을 묘사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국립 조각상 홀 (National Statuary Hall) 이다. 방의 둘레는 거대한 기둥이 서 있고 샹들리에가 중앙에 위치해 있다. 각 기둥 사이에는 각 주에서 저명한 인사 2명씩의 조각상을 보내 전시하도록 했다고 한다. 영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천장은 창문이 나 있어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형태로 되어 있다.
투어가 끝나고 Visitor Center 를 나오며 다시 국회의사당 건물을 보니 원형홀 꼭대기에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Freedom) 이 위치해 있었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Statue of Liberty) 와는 이름이 약간 다르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National Gallery of Art - East 국립미술관 동관이었다. 미술관은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동관과 고전적인 작품을 전시하는 서관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작년에만 약 3백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심지어 무료 개방이다. 건물 외벽에 미술관 이름이 잘 보이지 않아 문 앞까지 가야 미술관임을 확신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동관으로 들어서자마자 탁 트인 공간과 현대적으로 꾸며놓은 모습에 매료되었다. 벤치에 앉아 땀도 식힐 겸 공간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었다. 필립 거스턴 (Philip Guston) 특별전시가 있다는 광고에 눈길이 가자마자 해당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필립 거스턴은 미국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로 알려져 있다. 잭슨 폴락과 함께 추상 미술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말년에는 만화적인 요소가 가득한 화풍을 선보이며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만화에 관심이 많았던 어린 시절을 감안하더라도 이러한 화풍의 변화는 너무 급진적이라 당시에 빛을 보지 못하고 후대에 와서 인정받기 시작한다.

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눈길이 가는 몇 가지 그림이 있어 담아보고자 한다. 아래는 귀환이라는 작품인데 사람들의 재회 장면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보는 각도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대상과 색감이 달라져 묘한 감정을 준다.

거스턴의 만화적인 요소의 그림에는 분홍색이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밝고 화사한 느낌을 주지만 그림에 표현되는 사물이나 인물을 대입하면 전반적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경향이 있었다.
아래는 열린 창이라는 작품인데 창 밖은 고층 건물이 보이므로 나 자신도 높은 곳에 있는 셈이다. 창 밖은 고요해 보이지만 창 안쪽에는 뭔가가 많이 걸려있어 복잡한 마음을 준다.

아래는 그림, 흡연, 식사라는 작품인데 음식이 담겨있는 그릇을 가슴에 올려놓고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는 작가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걱정이나 고민을 표현한 것 같은데 팽팽해진 볼에 분홍색 느낌이 더해져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 같다.

거스턴 그림 전시 감상을 마치고 지하 통로를 통해 서관으로 이동했다. 동관과는 다르게 박물관의 느낌이 났는데, 전시방 중간중간에는 로툰다 형식 (원형의 공간에 돔 지붕을 올린 건물) 의 공간에는 분수와 조각상들로 채워져 있었다. 맑은 날에는 채광이 좋아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다.


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역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Ginevra de' Benci 초상화였다. 미국에 남아있는 다빈치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한다. 약간의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나리자와는 다르게 지네브라는 약간 엄숙하면서도 무심한듯한 표정이다.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워싱턴 DC의 대미는 바이블 뮤지엄 (Museum of The Bible) 으로 정했다. 입장료는 $20 불로 싼 편이 아니었으나 최근 웹사이트를 다시 방문해 보니 온라인 가격이 $30불로 올라 있었다.
정문에 들어서기 전 양쪽에 청동으로 새겨진 성경의 위엄에 압도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성경을 접하게 한다는 취지로 세워진 성경 박물관은 6층 건물에 방대한 성경 사본과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보낸 나사렛 마을을 꾸며놓은 전시관이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의 북쪽 갈리리 지방에 위치한 작은 도시이다. 나사렛이란 이름의 어원은 히브리어로 ‘싹트다’, ‘솟아나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비슷한 이름이 많아 구별하기 위해 지명을 이름에 덧붙여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었다.

나사렛은 한눈에 봐도 가난한 동네임이 느껴졌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나사렛은 가장 멀리 떨어진 곳 중 하나였다.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가 성경에도 나올 만큼 나사렛은 아주 척박한 시골 동네로 보였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베들레헴이지만, 나사렛은 공생애 사역 이전의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 항상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었다. 낮아지고 비우는 삶을 살았던 예수님의 고향을 이렇게나마 접할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